이계삼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
[세상 읽기] 퇴직 소감/ 이계삼
오늘날 교육문제에는 중산층으로
안락하게 살고 싶다는 욕구와
밀려나면 끝이란 공포가 서려 있다
제목을 보고 짐작했겠지만, 나는 지난 2월10일자로 교사직을 그만두었다. 만 11년,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하루하루 꽉꽉 채우는 기분으로 지냈기에 미련도 후회도 없다. 아이들과 보냈던 행복한 시간들이 떠올라 더러 외로울 때가 있겠지만, 오랜 시간 고민한 끝에 내린 결단이고, 앞으로의 내 생활이 그런 한가로운 상념에 빠져들 여유가 없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별로 걱정되지는 않는다.
나는 비록 학교를 떠나지만, 공교육은 여전히 소중하다. 뭔가 희망적인 데가 있어서가 아니라, 아이들이 지금 다니고 있고, 앞으로도 다니게 될 것이고, 우리 모두는 이 체제 속에 ‘어쩔 수 없이’ 묶여 있기 때문이다. 공교육은 이렇게 어이없는 방식으로 ‘동시대성’을 담지하고 있다.
2010년 혁신학교로 지정된 한 학교의 학생들이 원어민 교사와 수업을 하는 모습이다. 경기도교육청 제공 |
아이들을 세상의 때를 묻히지 않고 무균질의 깨끗한 공간에서 키우겠다는 것은 만용이자 허영이다. 우리는 어떻게든 세상의 때를 조금씩은 묻히며 살게 되어 있다. 내 자식만은 좀 안전한 곳으로 도피시키겠다는 욕심이 오늘날 교육 개혁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서글프지만, 이런 현실이라도 몸으로 겪고 배우고 갈등하고 또 싸워야 할 이유가 있다. 이 또한 우리가 익히지 않으면 안 될 ‘동시대성’의 한 요소이므로.
지난 시절, 대안학교와 혁신학교, 그리고 핀란드 교육 열풍 따위 바람들을 지켜보았다. 헌신적인 이들의 노고를 존중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퍽 회의적이었다. 교육은 백년대계이기도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나날의 삶이기도 하다. 대안이라면서 거기에 참여할 기회를 제한당하는 사람이나 계층이 있다면 거기에다 대안이라는 이름을 붙여서는 안 된다. 핀란드든 어디든 훌륭한 교육체제를 갖춘 나라들은 거의 200년에 가까운 갈등과 시행착오의 역사들을 갖고 있다. 200년 동안 따라가서 그런 체제를 만들어야 할 만큼 그 나라들이 매력적이지는 않다. 경기도 어느 지역에 생긴 혁신초등학교가 입소문을 타게 되니 그 동네 전셋값이 바로 옆 동네보다 1억 이상 뛰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또 한번 절망했다. 전가의 보도처럼 이야기되는 이 혁신학교 바람의 끝은 결국 부동산 가격 폭등인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제도와 정책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교육은 오늘날 한국인들의 사회적 삶의 성패를 규정하는 핵심적인 관문이다. 거기에는 중산층으로 안락하게 살고 싶다는 욕구와 여기서 밀려나면 끝이라는 공포가 서려 있다. 거기에는 믿을 건 내 가족, 내 자식밖에 없다는 가족주의와 가족애를 빙자한 끔찍한 자기애가 있고, 좋은 삶이란 그저 좋은 대학 나와서 그럭저럭 사는 것이라는 속물적인 인생관이 있다. 나와 내 자식이 이 체제의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내 자식이 기층 민중의 일원으로, 농민으로, 노동자로 살아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원하든 원치 않든 많이 벌 수도 풍족하게 쓸 수도 없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는 분명한 사실을 자각하지 않는다면, 우리 교육문제는 아주 작은 것도 풀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손을 써볼 수도 없을 정도로 똘똘 뭉쳐 버린 이 완고한 체제 이곳저곳에 누군가가 구멍을 숭숭 뚫어놓지 않는다면 출구는 열리지 않을 것이며, 아이들의 삶은 여전히 캄캄할 것이다.
학교를 떠나는 나의 가장 큰 화두는 ‘농업’이다. 그리고 이 야만적인 현실을 온몸으로 들이받는 ‘투쟁’이다. 나는 입으로 떠들지 않고 몸으로 살기 위해 퇴직을 결행했다. 이 완고한 체제에 작은 구멍이라도 뚫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수많은 이들이 먼저 걸어갔고, 지금 걷고 있는 길에 이제 나도 합류한다.
이계삼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