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강사가 된 나를 뒤돌아보기
가족강사 첫 모임을 한다는 연락을 받고나서 지난 메일함에서 이 글을 찾아 읽었다.
지금 막내동생은 36살이다. 24살때 쓴 글이니 12년전이다.
이글을 읽어보니 내가 친정엄마에게 큰 부담을 주는 존재였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패밀리링크 (http//www.familylink.or.kr) 교육을 받고, 그 교재를 보면서 많이 배웠는데 이제 이것을 가족 강사가 되어 다른 가족에게 알려 주는 일을 맡게 된 것이다.
그래도 이런 글이 남아 있어서 큰 힘이 된다.
친정어머니 살아 계실 때 책 만들어서 갖다 드리고 싶다.
그 동안의 고생과 그 아련한 것들이 생생하게 남아 있어서 우리 가족은 행복한 것 같다.
부모님께.
고추축제에서 상타준 어머니를 축하하며
큰딸이 쓴 편지입니다.
학교 다닐때 공부 잘 했던 막내아들이 고등학교 3학년되던해 아프면서 겪는 마음의 아픔이 많이 크신 엄마지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병을 고쳐보려고 애쓰면서 많이 고생하고 계신 엄마를 위해 큰딸인 제가 무엇을 도와 드릴 수가 있을까요?
가끔씩 동생을 우리집에 오라고해서 같이 나들이를 다녀오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고, 함께 이야기를 나눠 주는 것이 그 동생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아직도 착하기만 한 동생이 병으로 인해 하루종일 티브이를 보거나 계속 집안에서 왔다갔다 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 안타까워 가슴이 아려옵니다. 신문을 보거나 책을 읽거나 컴퓨터로 정보를 찾거나 하는 긍정적인 모습을 보고 싶은데 동생은 잠을 자거나 티브이채널 돌리거나 왔다갔다 하거나 하니까 모른척 아무렇지 않은듯 보아넘기려면 많은 인내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농촌에서 여러가지 일을 하시는 부모님곁에서 동생도 나름대로 돕고 일손도 거들어보지만 건강한 사람과는 아주 많은 차이가 나지요. 동생도 얼마나 힘들었으면 제초제를 먹고 하늘나라로 갈 생각을 했을까요?
엄마.
사랑하는 엄마.
엄마가 계셔서 제가 막내동생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부모님이 병원비와 같이 살고 계시니까 제가 가끔씩이라도 동생에게 전화도 할 수 있고, 또 우리집에 초대해서 맛있는 것을 맘껏 먹일 수 있고, 같이 여행도 할 수 있습니다. 같이 외식도 해보면 동생은 아픈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마음씨 착한 순진한 막내동생입니다. 좋은 장소에서는 여유도 알고, 성숙된 시민의식도 가진 건강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다 찍은 필름을 가지고 현상소에 가보는 것도 처음인 24살의 산골소년입니다. 아직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아 어리숙할뿐입니다. 우리는 병자 취급하지말고, 그냥 해보지못해서 모르는 것을 하나씩 알려주는 안내인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시골에서 돈 벌기 힘든 것 알지만 동생을 위해서는 써야 할 돈입니다. 돈 주고 음식을 시켜먹어보고, 돈 주고 레스토랑을 가봐야 그런 좋은 곳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동생입니다.
돈 아끼려고 식당에 안가고, 놀러 안다니고, 안데리고 다니면 동생은 이 세상이 이렇게 좋은 곳이 있다는 것도 모른체 그냥 병든 사람으로 살아야 하고, 동생은 스스로도 더 힘들게 살아야 하는 환경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어머니.
낳아서 24년간을 힘들게 키워주신 어머니기에 감히 부탁드립니다. 엄마. 이 세상의그 어떤 것과도 비교하지 마세요. 그냥 우리 막내동생이 살아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신에게 감사드리며 그외 모든 것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여 주십시요. 아프지 않은 딸자식들이 시집가서 건강한 손주 낳고 살고 있고, 처갓집일이라면 두손들고 달려가는 사위 3명 얻은 것 감사하고, 아들 둘 있는 것에 감사하면서 아버지와 사이좋게 살아주셨으면 합니다.
엄마 힘든 것 알지요. 엄마 자식 잘되라고 그토록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고추농사 지으며 그 외농삿일 거들며 몸과 마음 병난 것 잘 알지요. 아픈 몸 이끌고, 막내아들 병원생활 뒷바라지 할 때 무너져내리는 아픔과 절망과 고통 알지요. 남한테 차마 말할 병명도 못되는 것 그 고통 알지요. 엄마. 자식들 가르치기 위해 학비 대느라 막내아들 분유도 못사주고, 이유식도 못먹인 것을 죄로 여기는 그 피끓는 아픔을 알지요. 처음 결혼해서 아이들 일곱을 낳도록 입에 맞는 음식 사주지 않아 미운 아버지의 행동도 삭이기 힘들다는 것 알지요. 첫자식 돌때쯤 전신뒤틀림으로 장애아가 되었을때 엄마된 고통 알지요. 제가 자식 낳아 기르고 있잖아요. 엄마의 그 힘든 고통 이해 하지요. 가난한 집에서 고집 세신 아버지와 힘겨운 삶의 투쟁 벌여나가시느라 힘드셨던 점 이해해요. 아버지는 첫아이낳기전부터 아파서 병과 투쟁하셨었죠. 엄마의 온갖 정성과 간호로 새로 태어나신 걸 알지요. 곡식을 가꿀 때 자식 돌보듯 남보다 열 배 스무 배 노력하신 점 알고 있지요. 그래서 지방방송국에서 방영하는 내고향 소식에서 고추밭 소개와 인터뷰를 멋지게 하셨지요.청양고추축제 새로 생기는데 한 몫을 하는 행운도 얻으셨고요. 참으로 열심히 사셨던 모습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이혼을 하는데 엄마는 그 힘든 역경 이겨내시고 자식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고 계십니다. 결혼해서 아이 낳았으면 끝까지 내손으로 키워 내겠다는 일념으로 여지껏 버텨오신 그 인내를 배우고 있습니다. 결혼한 세 딸은 그런 어머니를 본받아 힘들고 어려워도 현명하게 인내하며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어머니 힘드실 때 말씀하세요. 저는 막내동생을 사랑합니다. 한 달에 한 번씩 휴가처럼 저희집에 오게해서 같이 지낼 수 있습니다. 그 때만이라도 따뜻한 정을 듬뿍 주고나면 저도 큰누이로써 아주 행복하답니다.
어머니가 어려우실때 도움을 청하세요. 언제든 달려 가겠습니다. 어려워 하시지 마세요. 동생을 도울 수 있을때 도와야 동생도 고생 덜 하고, 부모님과 저희들도 부담이 덜어지잖아요. 어머니 저와 약속해 주세요.
막내동생이 환자라고 말하지 말자고요. 환자이기전에 아직 세상을 배우지 못한 어린 아이라고만 생각하고, 함께 세상을 알려주는데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어머니.
전 엄마를 존경합니다. 엄마 자신을 위해 살지 못했던 가난한 세월을 현명하게 이겨내시고 지금 꿋꿋하게 살아가시는 모습을 보고 정말 눈물이 나도록 진하게감동받고 있습니다.그리고 아픈 동생을 위해 새롭게 살아가시려고 애쓰고 계신 모습을 볼 때마다 정말 고개가 숙여집니다.
동생이 먼훗날 건강해지면 그것은 엄마의 피와 땀과 울부짖는 기도의 힘으로 거듭남 것임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어머니.
이제 미워하지 않는 사랑으로 아빠를 대해 주세요.
그래야 저희들이 맘편히 친정을 드나들 수 있고, 손주녀석들도 할머니의 고운 마음속에서 아름답게 자라날 거예요. 할머니를 아름답게 기억할 수 있도록 지금 어려운 시기를 지혜롭게 잘 헤쳐나가시길 바랍니다.
어머니.
엄마. 막내아들을 칭찬으로 일으켜 세우는 기적을 보여주십시요.
힘없는 아이를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것은 그 방법이 최고일 듯 싶습니다.
딸들이 엄마에게 힘을 보태겠습니다. 혼자 외롭게 투쟁하지 마시고, 함께 하면서 고통속에서도 행복을 찾을 줄 아는 아름다운 모녀로 거듭 태어나자고요.
엄마. 사랑해요. 엄마에게 이 글을 쓸 수 있어서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추신.
제막내동생은 조현병으로 추정되는 것을 앓고 있습니다. 두 번의 입원치료가 있었고, 약물치료는 계속 하고 있습니다. 가끔 상태가 안좋아지면 집안이 쑥대밭으로 변하지요. 그래서 정확한 발병원인과 시기를 조졀해야 하는데 저희들로서는 가늠하기가 매우 어려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