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을 지키는 사람들

잘해주어야 할 그아이..-신경숙-

오월의 신부 2002. 6. 7. 18:09
어제는 큰딸 인정이의 남자친구가
놀러왔다.
학교 끝나고 전화가 왔었다.
인정인데 준이하고 좀 놀다가 집에간다고..
그러라고 했더니 한시간쯤 후에 같이 왔다.
인정이를 통해 얘기만 많이 들었었다.
지난주까지 짝궁이었었는데 처음엔
맘에 않든다며 불만이 많았었다.
4분단이라서 벽쪽에 앉는데 짝궁인 준이가
비켜주지 않아서 화장실갈때나 밖으로 나올때
너무 불편하다는 말을 듣고 난 많이 속상했었다.
그래서 짝궁이 바뀌길 얼마나 기다렸었는데
정작 짝궁이 바뀔즈음이 되자 너무 절친한
사이가 되어 친구들한테 둘이 사귀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단다.
저녁때가 다 되도록 놀다가 인정이와 현정이가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그리고 오늘!
초인종소리와 함께 웅성웅성 떠드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또 왔나싶어 불쾌해하며 문을 열었는데
준이가 이거 드세요!하며 뭔가 내밀었다.
젤리가 잔뜩 들어있는 화려한 봉지를 건네주었다.
100원짜리였다.
그리고 인정이와 현정이에게도 열심히 무언가
나눠주었다.
순간 마음이 찡했다.
와서 놀고싶은마음은 간절한데 또와서 내게 미안하다는
말보다 진한 마음이 담긴것 같아서...
아직 어린나이이건만 너무 일찍 철이든것 같아
왠지 안타까운 마음..
그런 그애를 앞으론 무슨일이 있어도 미워할수
없을것만 같았다.
오늘은 일찍 끝나 급식을 않하고 온터라
쪄놓은 고구마를 먹게 하고 잠시후 떡만두국을
끓여서 점심으로 먹었다.
학교에서 빵과 음료수를 먹었다며 약간 남겼다.
먹으며 이것저것 얘기를 하다가 난 더 많이 놀랐다.
지금 있는곳은 집이 아니라 보령원에 있다고 했다.
사회복지시설인가 생각하고 있는데 인정이가 대뜸
먼저 물었다.고아원같은데냐고....그렇다고 준이는
대답했다.
아저씨 같은 모습.눈이 큰 아이.
같은 모습으로 컸을 사촌조카 해동이와 동룡이가
떠올랐다.
주말엔 누나와 함께 새엄마와 아빠를 만나러 갈때도 있고
서울에서 친엄마가 오라고 하면 거기도 간다고 했다.
놀면서도 내 눈치를 보는것 같았다.
스스로 늘어논것들을 정리하고 먹고난것은 주방에
가져다 놓고 점심을 먹고 난후에도 자기가 먹은것은
소리없이 씽크대에 가져다가 담가놓는 모습을 보였다.
편히 놀게 하기위해 난 안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책을 읽었다.
신나게 잘 노는 소리가 들려오며 졸음이 몰려오는통에
난 낮잠을 잤다.
설잠을 자는 통에 미수가루 타 먹자는 소리 뭐하자는 소리
떠들썩한 분위기가 계속되더니 현관문 여는 소리가 났다.
한참후에 맑은정신으로 밖에 나와보니 현관문에 메모가
남겨있었다.
엄마!
저 인정인데요.3시 35분에 박준 학교까지 데려다 줄께요.
그리고 제 지갑에 200원 남았는데 100원 쓸께요.
모두 같이 먹을께요.좀 있다 들어올께요.걱정하지 마세요.
말없이 외출할땐 늘 이렇게 인정이는 메모를 남긴다.
그리고 지금은 돌아와 열심히 숙제를 하고 있다.
옷이 엉망이었다.
비가 와서 젖어있는데 놀이터에서 미끄럼을 탔단다.
학교앞에서 반 친구들을 만나서...
기분좋게 옷을 갈아입으라고 했다.
그리고 준이랑 잘 놀으라고 하고 잘해주라고
부탁아닌 부탁을 했다.
앞으로 아무때나 놀러온다고 하면 데리고 오라고도 했다.
다음번엔 맛있는것을 해주어야겠다.
따뜻하게 대해주어야겠다.
그리고 딸들의 친구들을 편견없이 사랑해주어야겠다고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