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을 지키는 사람들
석가탄신일에 다녀온곳-신경숙-
오월의 신부
2002. 7. 6. 19:25
일요일인 석가탄신일엔
등산을 갔다.
광천 바닷가로 놀러갈 계획이었는데
절에도 들릴겸해서 성주산으로 정했다.
등산로 입구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니
바람이 불어 몹시 추웠다.
아무리 날씨가 좋아도 여름옷을 입기엔
춥다는걸 뒤늦게 깨달았다.
올라오다가 남편이 아는사람을 만났는데
놀러왔다 가시는 길이라며 김밥을 잔뜩
주셨다.
우리도 김밥을 준비했는데....
바로 앞 정자에 앉아 김밥과 따끈한
컵라면을 맛있게 먹으면서도 혹시나
아이들이 탈이나 나지 않을까 걱정됐다.
난 그냥 김밥도 많은데 시골에나 가자고
했더니 아이들은 좋다고 환호성을 질렀다.
시골로 향하는가 싶더니 가는길에 있는
석탄박물관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매일 지나치면서 한번쯤 꼭 가자고 입버릇처럼
말했었는데 ....
주위도 깔끔하고 넓직하면서 예쁜 휴식공간이
처음부터 눈에 들어왔다.
1000원씩 하는 입장권을 끊어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이 너무 좋아했다.
책에서만 보던 광부아저씨들이 땅속 깊은곳에서
일하는 모습을 재현해 놓은것들에 신기해했다.
가상체험공간은 우리에게도 몹시 신선한것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컴컴한곳을 내려갈땐 왠지
으시시하기도 했다.
숫자판에 400이란 숫자가 써지며 멈춰섰다.
땅속 깊숙한 곳에 와 있는듯 온몸이 서늘해졌다.
이렇게 깊고 위험한 곳에서 목숨을 담보로
생계를 위해 일하셨을 아버지같은 광부아저씨들의
노고가 무거운 마음으로 전해져왔다.
탄가루를 뒤집어 쓰고 작업복에 안전모를 쓴 낯익은
모습들이 굴속같은곳에서 석탄을 체취하는 모습들이
힘들어 보였다.
인정이가 책에서 읽었듯이 정말로 아저씨들이 일하는
탄광에 창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곳 저곳 한곳도 놓치지 않고 긴장된 모습으로
다 돌아본다음 밖으로 나오니 눈이 부시다는 말을
직접 체험할수 있었다.
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화창한 봄날이 너무나 근사했다.
자판기 앞에서 한잔씩 마시는 커피와 코코아차는
꿀맛이었고 더불어 여유로운 모습으로 비춰졌다.
야외전시장에는 탄차와 연장들이 쭉 진열되어 있어서
차에 올라탄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뒷쪽에 세워져있는 위령탑에 서서 아이들이게
묵념을 하도록 시켰다.
고생하시며 일하시다 목숨을 잃으신 분들을 위해
좋은세상에서 행복하라고 기도해주면 좋겠다며...
바로 이어져있는 뒷산 등산로에 올랐다.
왠만큼 올라서자 운동할수 있는 몇가지의 기구가
설치되어있는 쉼터가 있어 아이들과 더불어
철봉과 평행봉에 매달려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초록빛 산에 초록빛의 젊음으로 기분이 너무 좋았다.
내려와서 청소년 수련원 광장에서 열심히 축구를
즐기는 청년들을 바라보다가 우린 내려왔다.
꽃밭이 너무 예쁜 주차장 주변이 너무 아름다웠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가 부여에 있는 무령사에 들렀다.
아주 오래된 절중에 하나라며 한번가보자고 해서...
날이 날이니만큼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갖가지 먹거리와 장난감들이 즐비해 축제분위기가
느껴져 너무 좋았다.
뻥튀기를 사먹으며 좋아라하며 절로 향했다.
뻥튀기를 인정이가 들고 있었는데 다 먹은사람은
뻥!하고 외치면 하나씩 주기로 해서 더 많이
웃을수 있었고 재미있었다.
절안에 들어서니 오색찬란한 연등속에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적힌 쪽지들로 마당 하늘은
꽉차있었다.
부모님생각이 나서 전화를 계속했는데 받질 않았다.
모시고 나와 구경시켜드리고 싶었고 함께 좋은시간
보내고 싶었다.
부처님앞에 절을 올리는 인정이 현정이의 모습이
너무 예쁘고 기특했다.
절에 들리지 않으면 많이 서운했을뻔 했다.
그만큼 너무 너무 아름다웠고 즐거운 시간이었으니까..
돌탑에 작은돌 하나 얹어 놓으며 소원을 비는일은
이제 아이들도 우리만큼 많이 익숙해져 있는
모습들이다.
길을 내려오며 한과를 잔뜩 샀다(옥꼬시?)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갖다 드리자고 인정이가 말했다.
열심히 먹으며 시골로 향하는 차안에서 아이들은
신이나서 아는노래를 총동원해 노래를 불러댔다.
불량엄마 아빠인 우리는 우리끼리 얘기하느라 바빴다.
집에 도착하니 동원이는 버섯을 따가지고 들어오고
아버지께선 밭에서 일하시다 잠깐 집에 들린참이라고
하셨다.
김밥과 과자를 달게 잡수시는 아빠와 동원이였다.
아버지께서 참외와 딸기를 먹으라시며 부지런히 내놓으셨다.
너무 좋아하셨다.동생의 모습이 훤해서 보기 좋았다.
엄마는 외갓집에 놀러 가셨다고 했다.
참을 먹고 난후 아버지를 따라 참깨밭으로 향했다.
현정이도 할아버지의 자전거 앞에 타고 밭으로 갔다.
비닐을 씌웠는데 구멍사이로 참깨를 따라 자라올라온
잡초를 뽑고 흙으로 구멍을 메꾸는 작업이었다.
아버지와 둘이 쭈그리고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길 나누며
풀을 매는 일은 즐거웠다.
한참을 그러고 있고 인정이랑 현정이는 들길을 오가며
놀다가 집에 가더니 한참후에 휠체어를 타고 왔다.
엄마가 외삼촌이랑 오신것이었다.
다행이었다.
밥을 하러 가야하나 망설이고 있던 참이었다.
아버지의 일을 좀더 도울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집에 도착하니 어둑해졌다.
엄마랑 외삼촌은 열심히 퐁퐁을 풀어 세차를 하고 있었다.
부추를 낫으로 베어서 차에 싣고 아이들을 불러
집에 가자고 하니 아이들이 가기싫으니까 괜히
배고프다고 밥먹고 가자고 아우성이었다.
먹은게 많아 분명히 배는 고프지 않을것 같아
그냥 서둘렀다.
남은 김밥을 엄마께서 도로 주셨는데 오는 차안에서
아이들은 맛있게 몇개 먹더니 곤히 잠이 들었다.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왜 그러셨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내가 미웠다.
무슨 마음으로 왜 나마저 밥도 않하고 서둘러 나왔는지
정말 모를일이었다.
등산을 갔다.
광천 바닷가로 놀러갈 계획이었는데
절에도 들릴겸해서 성주산으로 정했다.
등산로 입구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니
바람이 불어 몹시 추웠다.
아무리 날씨가 좋아도 여름옷을 입기엔
춥다는걸 뒤늦게 깨달았다.
올라오다가 남편이 아는사람을 만났는데
놀러왔다 가시는 길이라며 김밥을 잔뜩
주셨다.
우리도 김밥을 준비했는데....
바로 앞 정자에 앉아 김밥과 따끈한
컵라면을 맛있게 먹으면서도 혹시나
아이들이 탈이나 나지 않을까 걱정됐다.
난 그냥 김밥도 많은데 시골에나 가자고
했더니 아이들은 좋다고 환호성을 질렀다.
시골로 향하는가 싶더니 가는길에 있는
석탄박물관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매일 지나치면서 한번쯤 꼭 가자고 입버릇처럼
말했었는데 ....
주위도 깔끔하고 넓직하면서 예쁜 휴식공간이
처음부터 눈에 들어왔다.
1000원씩 하는 입장권을 끊어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이 너무 좋아했다.
책에서만 보던 광부아저씨들이 땅속 깊은곳에서
일하는 모습을 재현해 놓은것들에 신기해했다.
가상체험공간은 우리에게도 몹시 신선한것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컴컴한곳을 내려갈땐 왠지
으시시하기도 했다.
숫자판에 400이란 숫자가 써지며 멈춰섰다.
땅속 깊숙한 곳에 와 있는듯 온몸이 서늘해졌다.
이렇게 깊고 위험한 곳에서 목숨을 담보로
생계를 위해 일하셨을 아버지같은 광부아저씨들의
노고가 무거운 마음으로 전해져왔다.
탄가루를 뒤집어 쓰고 작업복에 안전모를 쓴 낯익은
모습들이 굴속같은곳에서 석탄을 체취하는 모습들이
힘들어 보였다.
인정이가 책에서 읽었듯이 정말로 아저씨들이 일하는
탄광에 창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곳 저곳 한곳도 놓치지 않고 긴장된 모습으로
다 돌아본다음 밖으로 나오니 눈이 부시다는 말을
직접 체험할수 있었다.
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화창한 봄날이 너무나 근사했다.
자판기 앞에서 한잔씩 마시는 커피와 코코아차는
꿀맛이었고 더불어 여유로운 모습으로 비춰졌다.
야외전시장에는 탄차와 연장들이 쭉 진열되어 있어서
차에 올라탄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뒷쪽에 세워져있는 위령탑에 서서 아이들이게
묵념을 하도록 시켰다.
고생하시며 일하시다 목숨을 잃으신 분들을 위해
좋은세상에서 행복하라고 기도해주면 좋겠다며...
바로 이어져있는 뒷산 등산로에 올랐다.
왠만큼 올라서자 운동할수 있는 몇가지의 기구가
설치되어있는 쉼터가 있어 아이들과 더불어
철봉과 평행봉에 매달려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초록빛 산에 초록빛의 젊음으로 기분이 너무 좋았다.
내려와서 청소년 수련원 광장에서 열심히 축구를
즐기는 청년들을 바라보다가 우린 내려왔다.
꽃밭이 너무 예쁜 주차장 주변이 너무 아름다웠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가 부여에 있는 무령사에 들렀다.
아주 오래된 절중에 하나라며 한번가보자고 해서...
날이 날이니만큼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갖가지 먹거리와 장난감들이 즐비해 축제분위기가
느껴져 너무 좋았다.
뻥튀기를 사먹으며 좋아라하며 절로 향했다.
뻥튀기를 인정이가 들고 있었는데 다 먹은사람은
뻥!하고 외치면 하나씩 주기로 해서 더 많이
웃을수 있었고 재미있었다.
절안에 들어서니 오색찬란한 연등속에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적힌 쪽지들로 마당 하늘은
꽉차있었다.
부모님생각이 나서 전화를 계속했는데 받질 않았다.
모시고 나와 구경시켜드리고 싶었고 함께 좋은시간
보내고 싶었다.
부처님앞에 절을 올리는 인정이 현정이의 모습이
너무 예쁘고 기특했다.
절에 들리지 않으면 많이 서운했을뻔 했다.
그만큼 너무 너무 아름다웠고 즐거운 시간이었으니까..
돌탑에 작은돌 하나 얹어 놓으며 소원을 비는일은
이제 아이들도 우리만큼 많이 익숙해져 있는
모습들이다.
길을 내려오며 한과를 잔뜩 샀다(옥꼬시?)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갖다 드리자고 인정이가 말했다.
열심히 먹으며 시골로 향하는 차안에서 아이들은
신이나서 아는노래를 총동원해 노래를 불러댔다.
불량엄마 아빠인 우리는 우리끼리 얘기하느라 바빴다.
집에 도착하니 동원이는 버섯을 따가지고 들어오고
아버지께선 밭에서 일하시다 잠깐 집에 들린참이라고
하셨다.
김밥과 과자를 달게 잡수시는 아빠와 동원이였다.
아버지께서 참외와 딸기를 먹으라시며 부지런히 내놓으셨다.
너무 좋아하셨다.동생의 모습이 훤해서 보기 좋았다.
엄마는 외갓집에 놀러 가셨다고 했다.
참을 먹고 난후 아버지를 따라 참깨밭으로 향했다.
현정이도 할아버지의 자전거 앞에 타고 밭으로 갔다.
비닐을 씌웠는데 구멍사이로 참깨를 따라 자라올라온
잡초를 뽑고 흙으로 구멍을 메꾸는 작업이었다.
아버지와 둘이 쭈그리고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길 나누며
풀을 매는 일은 즐거웠다.
한참을 그러고 있고 인정이랑 현정이는 들길을 오가며
놀다가 집에 가더니 한참후에 휠체어를 타고 왔다.
엄마가 외삼촌이랑 오신것이었다.
다행이었다.
밥을 하러 가야하나 망설이고 있던 참이었다.
아버지의 일을 좀더 도울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집에 도착하니 어둑해졌다.
엄마랑 외삼촌은 열심히 퐁퐁을 풀어 세차를 하고 있었다.
부추를 낫으로 베어서 차에 싣고 아이들을 불러
집에 가자고 하니 아이들이 가기싫으니까 괜히
배고프다고 밥먹고 가자고 아우성이었다.
먹은게 많아 분명히 배는 고프지 않을것 같아
그냥 서둘렀다.
남은 김밥을 엄마께서 도로 주셨는데 오는 차안에서
아이들은 맛있게 몇개 먹더니 곤히 잠이 들었다.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왜 그러셨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내가 미웠다.
무슨 마음으로 왜 나마저 밥도 않하고 서둘러 나왔는지
정말 모를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