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을 지키는 사람들
일주일간의 변화
오월의 신부
2002. 11. 30. 02:28
2차 피해자진술을 받으러 경찰관이 병원에 왔다. 난 조목조목 따졌다. 그리고 엄마의 진술을 받아적게 했다. 이로써 우리 엄마는 사실에 가까운 진술을 하게 되어 마음의 짐을 많이 덜었을 것이다. 이제 2차 현장조사가 남아 있다.
29일날 처음으로 보조기를 차고 훨체어를 타고 화장실 출입을 하고, 침대에 앉아서 식사를 하셨다. 정말 이제 사람다운 모습으로 식사하시는 모습을 보니 좋았다. 인분이가 호박죽을 써왔는데 아주 맛있게 드셨다.
형규엄마도 왔었다. 음료수와 봉투를 주고 갔다. 작년에 신랑이 다쳐서 충대병원에서 오래 입원하고 있었다. 인대를 다쳐서 4군데 수술하고 재활훈련하느라 엄청 고생했다고 했다. 그 고통 몰라주었던게 미안했다. 병문안은 함께 2번 다녀왔었다. 난 그때 들국화모임에 못나가 보문산에 가서 전화했다가 친구들에게 욕만 엄청 얻어먹었다.
친정엄마는 내게 고맙다고 하셨다. 고생 많이 했다며. 수술받아도 팔처럼 아프고, 장애만 찾아오는 줄 알았는데 이번 수술은 잘 된 것 같다며 좋아하셨다. 하지만 엄마는 아직 주사를 많이 맞고 있어서 진통제가 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만약 주사와 약을 안먹고도 아프지 않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은 누워서 혼자서는 꼼짝도 못한다. 누워서 밥먹다 보조기라도 차니까 보호자가 일으켜 세워주면 앉아서 있는 상태다. 아직 혼자 일어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한지 우리는 모른다. 다만 그래도 지금의 모습은 지난 일주일전하고는 많이 다르다. 그때는 목옆의 주사줄과 등의 나쁜피 빼는 호수줄과 아래로는 소변줄이 이어져 있어 정말 주렁주렁달린 링거병과 마취기계와 또다른 주사약병이 매달려 있었다. 대소변을 보려면 두서너시간을 기다려야 하는등 정말 지겨운 고통이었다. 지금은 엄마몸에서 링거줄은 연결되어 있지만 그 외의 것은 제거되었다. 그 모습이 편안해 보여 좋다. 엄마의 고통이 내것인양 그 고통이 이어져 나도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편안해졌다.엄마를 보고 와서. 그리고 주위 사람들한테 힘들다고 말했다. 김향숙언니, 104동아줌마들, 보험회사직원, 형규엄마와 인분이한테 말했다. 시어머님께도 전화했다. 이제 난 나아진 기분이다. 혼자 끙끙 앓다 떨쳐버린 것 같다.
분간 못했던 심정이 날 강하게 만들었다. 진단서 들고 경찰서 다녀오고, 오늘 경찰과 대면해 다시 조사받고, 엄마의 수술결정여부를 놓고 온갖 고뇌와 시름했던 힘겨운 시간들, 그리고 수술후의 간병등 이것은 시간이 흐른다해도 내기억속에 오래 남을 것 같다. 남편과의 갈등은 어쩔수없는 상태로 지속되어질 것 같다. 내어머니에 대한 애착에서 나온 것이라 난 상처가 깊게 패이는 것 같다. 지금 난 피곤해서 일을 하고 싶다는 오기같은 것은 다 팽개쳐버리고 싶다. 그냥 아이들과 뒹굴고 싶다.
내가 혼자 살 수 없었다. 내 주위의 따뜻한 시선이 정말 힘을 갖게 도와주었다. 고마운 이웃들이다. 아픔을 깊게 느껴본 이들은 모두 이해해 주었다. 당연한 것이라고, 고통은 혼자 새기는 것이라고 다독여주었다. 엄마는이세상에 한 분뿐이라서 그렇다고 말해주었다. 부부는 대화가 필요하다고한 사람들의 말은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때로는 침묵이 더 필요하니까. 내 가슴 다 도려내도 내 아픔 아무도 모를테니까. 난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엄마의 사고 뒤에 어떤 좋은 변화가 왔으면 좋겠다. 이렇게 아픈 뒤에 고통을 겪고 난 뒤에 밝고 화사한 기운이 내뿜어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힘겨운 싸움 끝이라고 믿고 싶다. 아직 다 끝난 것 아니지만. 다시 가해자와 마주치면 괜찮을지?
그래 이번엔 법에 호소한다는 마음으로 지내고 싶다. 보험회사와도 긴 실랑이 이어지겠지만 그것은 당분간 잊고 싶다.
이제 엄마의 아픔 잠시 잊고 살고 싶다. 내 일상으로 돌아와야 할 것 같다.
29일날 처음으로 보조기를 차고 훨체어를 타고 화장실 출입을 하고, 침대에 앉아서 식사를 하셨다. 정말 이제 사람다운 모습으로 식사하시는 모습을 보니 좋았다. 인분이가 호박죽을 써왔는데 아주 맛있게 드셨다.
형규엄마도 왔었다. 음료수와 봉투를 주고 갔다. 작년에 신랑이 다쳐서 충대병원에서 오래 입원하고 있었다. 인대를 다쳐서 4군데 수술하고 재활훈련하느라 엄청 고생했다고 했다. 그 고통 몰라주었던게 미안했다. 병문안은 함께 2번 다녀왔었다. 난 그때 들국화모임에 못나가 보문산에 가서 전화했다가 친구들에게 욕만 엄청 얻어먹었다.
친정엄마는 내게 고맙다고 하셨다. 고생 많이 했다며. 수술받아도 팔처럼 아프고, 장애만 찾아오는 줄 알았는데 이번 수술은 잘 된 것 같다며 좋아하셨다. 하지만 엄마는 아직 주사를 많이 맞고 있어서 진통제가 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만약 주사와 약을 안먹고도 아프지 않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은 누워서 혼자서는 꼼짝도 못한다. 누워서 밥먹다 보조기라도 차니까 보호자가 일으켜 세워주면 앉아서 있는 상태다. 아직 혼자 일어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한지 우리는 모른다. 다만 그래도 지금의 모습은 지난 일주일전하고는 많이 다르다. 그때는 목옆의 주사줄과 등의 나쁜피 빼는 호수줄과 아래로는 소변줄이 이어져 있어 정말 주렁주렁달린 링거병과 마취기계와 또다른 주사약병이 매달려 있었다. 대소변을 보려면 두서너시간을 기다려야 하는등 정말 지겨운 고통이었다. 지금은 엄마몸에서 링거줄은 연결되어 있지만 그 외의 것은 제거되었다. 그 모습이 편안해 보여 좋다. 엄마의 고통이 내것인양 그 고통이 이어져 나도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편안해졌다.엄마를 보고 와서. 그리고 주위 사람들한테 힘들다고 말했다. 김향숙언니, 104동아줌마들, 보험회사직원, 형규엄마와 인분이한테 말했다. 시어머님께도 전화했다. 이제 난 나아진 기분이다. 혼자 끙끙 앓다 떨쳐버린 것 같다.
분간 못했던 심정이 날 강하게 만들었다. 진단서 들고 경찰서 다녀오고, 오늘 경찰과 대면해 다시 조사받고, 엄마의 수술결정여부를 놓고 온갖 고뇌와 시름했던 힘겨운 시간들, 그리고 수술후의 간병등 이것은 시간이 흐른다해도 내기억속에 오래 남을 것 같다. 남편과의 갈등은 어쩔수없는 상태로 지속되어질 것 같다. 내어머니에 대한 애착에서 나온 것이라 난 상처가 깊게 패이는 것 같다. 지금 난 피곤해서 일을 하고 싶다는 오기같은 것은 다 팽개쳐버리고 싶다. 그냥 아이들과 뒹굴고 싶다.
내가 혼자 살 수 없었다. 내 주위의 따뜻한 시선이 정말 힘을 갖게 도와주었다. 고마운 이웃들이다. 아픔을 깊게 느껴본 이들은 모두 이해해 주었다. 당연한 것이라고, 고통은 혼자 새기는 것이라고 다독여주었다. 엄마는이세상에 한 분뿐이라서 그렇다고 말해주었다. 부부는 대화가 필요하다고한 사람들의 말은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때로는 침묵이 더 필요하니까. 내 가슴 다 도려내도 내 아픔 아무도 모를테니까. 난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엄마의 사고 뒤에 어떤 좋은 변화가 왔으면 좋겠다. 이렇게 아픈 뒤에 고통을 겪고 난 뒤에 밝고 화사한 기운이 내뿜어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힘겨운 싸움 끝이라고 믿고 싶다. 아직 다 끝난 것 아니지만. 다시 가해자와 마주치면 괜찮을지?
그래 이번엔 법에 호소한다는 마음으로 지내고 싶다. 보험회사와도 긴 실랑이 이어지겠지만 그것은 당분간 잊고 싶다.
이제 엄마의 아픔 잠시 잊고 살고 싶다. 내 일상으로 돌아와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