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을 지키는 사람들

나에게 힘이 되어주는 사람들

오월의 신부 2002. 12. 5. 21:11
오늘은 마음이 편해서 울지 않을 것 같았는데 제부의 메일을 받고 다시 울고 있다. 한순간 컴퓨터앞에서 눈물을 흘리고나면 왠지 편안해지곤 한다.


충대에서 공주현대병원으로 어머니는 옮겼다. 교통사고피해자는 여러모로 신경전을 벌여야 한다. 퇴원하는데 비보험이라며 오십일만을 내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 내역은 참으로 한심하다. 교수특진비가 380,000원이고, 식대가 30,000원 2인실에서 지내서 보험적용안된 비용 100,000원이다. 우리는 수술하라고해서 받았는데 보험회사에서는 특진비는 주지 않는다고 했다. 6인실에서 지냈는데 병실나기까지 지냈던 2인실요금은 보험회사에서 준다고했는데 그 비용은 고스란히 피해자보고 물으라고 했다. 나중에 줄 거라고 했지만 이런 문제가 생긴 원인은 자동차보험회사 약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법규때문에 자동차사고피해자는 사고당사자는 아파서 고생이고, 보호자는 이러저러한 뒷처리에 쩔쩔매게 된다. 교통비도 만만찮은데 이런 추가적인 비용까지 떠맡아야 하는 고통을 주는 보험사와 병원측이 너무 얄밉다. 양질의 서비스를 받을 권리는 있다지만 그것은 소송같은 큰 일을 통해서만 가능할뿐 우리처럼 소시민에게는 너무나 먼 이야기같이 들린다. 법을 만든 사람들이 이 망에 걸려들어야 될 일 같다. 그래야 왜 사람들이 고통을 겪는지 잘 알게 될 것이다.


전화통을 붙잡고, 보험회사직원과 이야기하고, 병원 원무과직원과 통화하고, 우리식구들과 통화하고 보이지 않는 실랑이속에 그냥 피곤해진 하루다.


우리어머니는 보조기를 차고 훨체어타고 화장실 출입을 하신다. 이 일을 얼마나 감사하게 생각하는지 모른다. 누워서 대소변 보는 일은 참으로 힘든 일이었다. 나의 외할머니는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시며 정말 나아갈듯한 미소로 나를 대하셨다. 이제 댁에 가실 수 있겠다며. 그러나 곧 병원에 다시 오신다고 하셨다. 여든두살이신 우리 할머니가 58세인 어머니를 돌보고 계신다. 아름다운 모정이다.


나는 그냥 편하게 생각했다. 공주에 계시면 우선 내가 자주 가볼수 있어 좋고, 엄마가 맘 편히 병원생활을 하실 수 있을 것 같았다. 장기간 있어야 할 장소라서 내가 힘닿는데까지 함께 옆에서 있어주고 싶었다. 엄마니까. 아픈 사람이니까 그냥 옆에서 친구처럼 지내주고 싶다. 외롭고 허전한 엄마 가슴에 가끔씩 찾아가 엄마가 하시고 싶은 이야기 들어주며 같이 웃어주고, 같이 울어주는 그냥 동행자가 되어주고 싶었다. 엄마는 친구도 없다. 어릴적 친구는 만나지 못해서 없고, 동네친구는 모두 이사가서 없고, 시골에 있는 친구는 엄마가 십일년전에 교통사고당한뒤로 멀어지게 되었다. 건강한 사람끼리 서로 돕고 사는 농사일이라 엄마는 자연히 멀어지게 되었다. 그 뒤로는 아픈사람 뒤치닥꺼리로 혼자 가슴앓이 심하게 해오셨다. 엄마는 참 한 많은 분이다. 첫자식을 병으로 잃고난뒤 온전한 정신으로 살았다기보다는 죽을 목숨으로 여기고, 오직 일만 강철같은 마음으로 해오신 분이다. 자식뒷바라지 위해 오직 내 몸 안아끼고 살아오신 결과다. 주름지고, 머리하얀 우리엄마다. 염색물이 다 빠지면 하얀머리가 된 엄마의 모습이 보일 것이다.


남편이 받아준 우리 엄마다. 제부가 모셔가 병수발 하겠다고 했던 우리 엄마다. 아버지도 부여로 가자고 하셨다. 갈 곳 많았던 우리 엄마니까 아직은 복많은 사람이라고 여기고 싶다. 늙고 병든 몸 보살펴주겠다고 나섰던 우리 동생네 난 평생 고마워하며 살 것이다. 그 마음이 진심이었던 것을 알기에 더더욱 고맙다. 행여 내가 지쳐 힘들면 그곳에 잠시 부탁을 해도 전혀 어려울 것 같지 않다.


남편과 제부는 예전에는 타인이었는데 지금은 아주 좋은 내 삶의 동반자다. 우리 어머니를 사이에두고 이런 따뜻한 마음 서로 나누어받을 수 있음에 정말 고맙기만 한 하루다.우리 아버지는 오늘 하루종일 밥도 못드시고 병원에 매달렸다. 저녁에 칼국수 한그릇 드시고 또 먼 시골집에 가셨다. 점심때 오뎅을 드신 것 같은데 오늘같은날 내가 김밥이라도 쌌더라면 좋았을 것을 생각을 못했다. 미래가 아파서 정신을 못차리기도 했지만 전화통화에 매달린 결과다.


이영수도 문병을 다녀가면서 따뜻한 목도리와 장갑을 선물해주고 갔다. 참 오랜만에 받아보는 장갑이다. 남편이 연애할때도 맨처음 선물은 장갑으로 했었다. 이런 따뜻한 기억이 오늘 기분좋게 한다.우리 시어머님도 혼자 대전병원으로 어제 문병을 다녀오셨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고마움을 표하며 전화를 끊었다. 얼마전에 전화해서 서운하다고 난리를 피웠었다. 허허 웃기만 하시던 어머니셨다. 남편한테 서운한 것을 시어머님께 풀었던 것이 더욱 미안해져서 더욱 고맙기도 하고, 좋기도 했다.


나도 언젠가는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