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을 지키는 사람들

효도 하는 따님 두셨군요.

오월의 신부 2003. 11. 22. 11:24
친정어머니의 교통사고 처리를 위해 보험회사 방문을 예약한 날이다. 서류는 이미 7월에 다 작성해 두었지만 마음이 내키지 않아 여지껏 미뤄두었다. 9월달에 당일날 방문하려고 했더니 내일 오라는 말에 실망해 아예 내년에 하려고 마음을 느긋하게 먹었었다. 보험회사는 이해가 안된다. 퇴원시키려 할 때만 닥달을 하고,퇴원 이후에는 아예 전화 한 통도 없었다. 우리가 피해자이면서도 먼저 보험회사를 찾아가야 하는 역순이 밟아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가기 싫다고 마냥 미물수는 없었다. 피할 수도 없었다. 어자피 한 번은 부딪치고 넘어야 할 산이었다.


남편과 의논을 했다. 난 단 한 번의 방문으로 일을 마무리 짓고 싶었다.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은 장소였으니까. 하지만 남편은 그냥 우리가 준비한 서류만 주고 그 쪽 이야기만 들어보고 소란없이 조용히 나오자고 했다. 다음 추가조치를 생각하면 되는 일이라고 했다. 대화와 타협 말이 좋아 그런거지 어떻게 이 상황에서 조용한 행동을 할지 자신이 없었다.


청심환이라도 먹고 싶은 심정이었다. 두렵고, 떨렸다. 수술여부를 결정할 때와 비슷한 두려움이 앞섰다. 대전까지 가는 동안 차 속에서 즐거운 이야기를 나눴다. 부담을 안가지고, 그냥 다음에 다시 나올 것을 각오하고 갔다.


남편과 동행하기를 잘했다. 비교적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이고, 들어주는 타입이다. 보험사 직원이 설명하는 것을 다 들어주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섣불리 반박하지도 않았다. 난 우선 같이 듣고 있어서 안심이 되었다. 남자들은 직장생활을 계속 하고 있어서 일반이론에 밝은 것 같다. 아는 것도 많고, 남을 배려하는 면도 많이 보인다. 난 아는 사람을 통해 설명을 이미 들었어도 잘 모르겠고, 상황에 맞딱뜨리고 나서 깨닫게 되는 경향이 있다. 경험만큼 생생한 교육이 없다는 것을 늘 느낀다. 직접 몸으로 부딪쳐보면 하나씩 알게 된다. 이번 상담은 비교적 성공적이었다. 우리가 보험사직원의 말을 이미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 사람이 진실을 말하는지, 거짓을 말하는지 이미 알고 있어서 속을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모르는 피해자들도 많을 것이다. 상담원의 이야기만 믿고, 그냥 합의하는 사람들도 반은 될 것이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내가 공부한만큼은 확실하게 알 수 있어서 든든했다. 이번 사고를 통해 변호사사이틀 보며 알게 된 지식도 많았다. 나에게 해당되는 사항만큼은 확실하게 안다. 공부만큼 확실한 투자는 없는 것 같다. 내 자존심이다. 아직은 남의 말에 의존하며 기대며 살긴 싫다.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근성하나 때문에 약간은 지식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것 같다.


사무실을 찾아가 마주 앉았다. 일단 보험약관기준 설명을 듣고, 틀린 곳을 지적하지 않으며 그냥 모르는척 계속해서 들었다. 나중에 우리가 준비한 서류를 보여주었다. 대학병원인 것이라 인정하겠지만 여러곳에서 100%인정은 안된다며 거듭된 말도 안되는 상황을 나열했다. 복사를 하고 서류를 넘겨 받았다. 이번엔 나의 차례가 되었다.어머니는 척추 금속봉을 이용한 기기고정술을 받았다. 몸 속에 뼈를 지지해주기 위해 6개의 핀을 박고, 줄 같은 것으로 얽매여 놓은 모습이다. 30센치의 흉터가 등을 타고 나있다. 보험회사의 말은 향후 추정비에서 불만있으면 이 금속봉을 빼고 합의를 보자고 말을 한다. 수술할수도 없을뿐더러 다시 누가 그런 아프고 힘든 수술을 할 것이냐 말이다. 다만 보상에 관계된다니까 비싼 돈 들여 진단서 끊고, 의사가 필요한 금액을 추정해서 적어준 금액이다. 이런 사실을 두고 보험회사는 수술을 안할수도 있고, 하더라도 대학병원 아닌 곳에서 수술하면 절반의 돈만 갖고 수술이 가능하니 적게 주는 것이란다. 이건 말도 안된다.수술하면 환자 가족은 전부 움직이게 되고 부가 비용은 엄청 들어간다.내가 공주에서 대전을 다니는데 이건 장난이 아니었다.그 추운 겨울에 덜덜 떨며 다녔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