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살짜리 아들이 반에서 부회장이 되었다고 축하해 달라고 했다.
학교 일찍 들어갔는데 그런데로 잘 적응한 셈이다.
남편한테도 전화로 알려주었더니 껄껄 웃었다.
네가 주는 기쁨에 감사한다. 오늘 엄마가 얼마나 울었는지 넌 모를테니까.
친정엄마와 전화통화하며 어제오늘 2시간동안 울었다.
막내동생을 살리는 길은 어머니가 자원봉사하며 아들을 위해 같이 곁에서 있어 주기로 마음을 먹으셨단다.
시골에 새집을 짓고 산지 이제 이삼년되었는데
막내가 도통 의욕을 못가지니까 이제 남과 더불어 살게 하려고
장애인사회복지시설을 돌아보고 다니셨단다.
땅만 무료로 임대해주고, 머무를 거처는 순수 마련하되 나갈때는 가져갈 수는 없는 곳이란다.
몸 불편한 사람들을 돌봐주고,
식사 당번도 번갈아 가며 준비하고,
손수 농사도 짓어서 팔 수도 있단다.
땅을 빌려준다는 말에 안심이 되어서 어머니는 새둥지를 마련하실 모양이다.
아직 거동이 가능할때 내 아들과 같은 사람들에게 식사를 준비해주고,
일해서 남는 이익이 생기면 기꺼이 그곳에 기부하고,
그 곳에 건물도 지어주고 생을 마감하고 싶다고 하셨다.
살아생전에 내 아들 머물곳 정해주고,
그 곳 사람들과 말벗이라도 하며 살아 가라고 미리 적응을 시켜주고 떠나가겠다고 하셨다.
부모가 장애아를 낳아서 어미도 고생이고,
본인은 더더욱 힘들고 어려운 생을 살게 했다며
이 한많은 설움을 안고 다시 시작해 보겠노라 하셨다.
하늘아래 우리 동생이 머무를 곳으로 알고
울며울며 그곳을 다녀오셨다고 했다.
80세가 넘는 외할머니와
산재환자인 외삼촌이 운전하고
장애인이 된 우리 엄마가 셋이서 너무 울어서 운전하기가 힘들다고 차를 세워놓고 쉬었다 오셨단다.
멀쩡한 자식들은 다 뭐하고
우리 엄마가 그 험난한 과정을 혼자 밟도록 놔 두었는지 너무 가슴이 아팠지만 난 같이 울어줄수밖에 없었다.
10년을 간호한 어머니한테 더이상 어떤 말도 할 수 없다.
결혼한 자식들은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가 없는 것이란다.
자기 가정 잘 지키며 살고, 좋은 엄마 노릇하며 살아가는 것이 친정엄마 돕는 길이란다.
큰딸이 사는 아파트 근처라며 좋아라 하며 그냥 돌아가시고.
다른곳은 작은딸이 사는 곳이라며 둘러보고 그냥 가시고,
며늘아기 자라던 곳이라며 둘러보며 그냥 가셨단다.
다들 나이 많고, 아프고, 자가용으로 움직여서 다른 곳에 들릴처지가 아니라며 그냥 가셨다고 한다.
냄새난다며 그냥 가신 마음 다 알아서 더더욱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꼭 들리시라고, 전화라도 꼭 하시라고 당부했지만 .....
온갖 농사 지어 먹으라고 다 싸보내주시며 맘편하게 들어오지도 못하는 자식집에 뭐 그리 좋은 것이 있느냐니까 그래도 내 자식들이 여기저기 살아서 너무 좋단다.
그 곳에서도 열심이 농사지어 다 나누어 주시겠다고 하셨다.
내가 나서서 같이 살아보겠다고도 했지만 그것도 말뿐이다.
엄마이기에 그것도 64세가 되신 어머니가 또다른 결정을 하신 것이다.
조금만이라도 내 힘을 보태 같이 살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 병을 이해할 수 없지만
그 약을 이해할 수 없지만
그걸 모르지만
난 동생을 사랑하고
어머니를 사랑하고
우리 아버지를 사랑한다.
어제 저녁 동생에게 알려 그애도 맘이 많이 아팠을 것이다.
우리 가정을 책임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남편을 이해하도록 애쓰고 싶다.
침대를 버렸다. 딸을 위해서.
안방은 넓어졌다. 새로운 침구를 장만해볼까 생각중이다.
오늘 들은 말중에 인간 쓰레기란 말이 가장 가슴 아팠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본인이 스스로 그런 느낌을 가지며 어렵게 살고 있나보다.
하지만 쓰레기도 잘 활용되면 처음 주인보다 더 오래오래 쓸 수 있고,
고물상 주인한테는 돈도 벌어주게도 한단다.
내가 내다 버린 침대가 나한테는 필요가 없어 쓰레기처리 되어 나갔으나
다른 좋은 주인을 만나면 잘 활용될 수도 있단다.
사람도 본인이 있을 곳을 잘 찾으면 잘 지낼수도 있단다.
늘 자살을 생각하는 아픔을 이겨내고
새로운 생동감이 살아나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병에서 비롯된 많은 사고들을 스스로 물리칠 수 있도록 아름다운 추억많이 만들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