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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신부 2017. 11. 6. 10:56

  사람은 좋은 것을 나누며 살아야 행복을 알게 되나보다. 어제 남동생이 킹크랩과 홍게를 가지고 와서 주고 갔다. 저녁때 퇴근한 남편과 맛있게 먹었다. 친정집에 모여 다같이 먹으려 했지만 모두 사정이 있어 못간다고하니 일하는 일정을 바꿔가며 남동생이 공주를 왔다. 말만 꺼내고 그냥 말 수 없어 직접 사고, 배달에 나선 것이다. 나도 작은 쇼핑백에 빵과 과자등을 넣어 가지고 나갔다. 일 끝나고 나온 동생한테 게를 건네받고 떡을 내밀었다. 반쯤 먹더니 청양 본가에 간다고 했다. 박스를 산 채로 들고와 주는 동생이 고마웠다. 한 마리면 된다고 했더니 조카도 있다며 홍게 한 마리 더 챙겨주는 정 많은 동생이다. TV에서만 보던 킹크랩을 찌는 것도 낯설어 찜솥에 다리를 자르고 넣어서 한소끔 김이 나게 쪘다. 이미 익혀서 온 것이라 김만 나면 먹을 수 있다고 동생이 말해주었다. 껍질을 가위로 자르면서 먹었다. 남편이 두번씩 가위질을 해 먹기 좋게 해줬다. 지난 봄에도 친정에 모여서 온가족이 꽃게를 먹었었다. 그 때도 남동생이 사온 것이었다. 아들이 서울로 대학교에 입학하러 가기 며칠전이었다. 남동생이 부모님 생각해서 큰 돈을 들여 사온 것이다. 일도 힘든 일을 하고 있는데 마음까지 고와서 안쓰럽다. 무엇이든 돕고 싶다.

  10월 마지막주부터 막내 동생은 산불지킴이로 일 시작했다. 차가 있으니 오토바이로 할 때보다 수월할 것 같다. 겨울에 미끄러운 걸 조심해야겠지만 참 잘된 일이다. 차 사고 안나고 잘 다니길 기도한다. 부모님도 같이 타고 다니실텐데 안전운행이 젤 중요하다. 나는 초보때 겨울내내 차를 세워두었다. 다 알아서 잘 하리라 믿어주자. 믿는만큼 잘 할 것이다. 39살이면 성인이다. 이제는 두 아들이 친정집의 일꾼이다. 결혼한 장남이 부모님 집 가까운 곳에서 살고 있고, 미혼인 아들도 있는 집이다. 친정엄마도 행복하다고 하셨다. 그것만으로도 난 벗어날 수 있다. 가난하지도 않고,  두 분이 살아계시니 그것만으로도 큰 축복이다. 이미 동생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각자 잘 살고 있다. 나만 바뀌면 된다. 이번 충주에서 2박3일간 교육받으면서 행복했다.   충주를  가기 위해 조치원역에서 기차  타보았다. 처음 만난 가족강사와도 숙소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서로 살아온 이야기도 나누고, 서로에게 핑요한 정보도 나누고, 자주 만나자고도 약속했다. 정신장애우를 가진 모임에서도 서로에게 친근한 모습을 보이며 교육도 열심히 들었다.  알고 싶은 내용들이었고, 알아야 아픈 환우를 감쌀 수 있기에 우리는 참 진지했다. 인권이 가장 취약한 계층을 끌어안고 산다는 것은 많은 불합리한 상황을 접하게 한다. 하나의 작은 힘들이 모여 큰 집단을 만들어야 다른 불합리에 맞설 수 있는데 우리 가족들의 모임은 작은 갈등으로 인해 커지지 못하고 정체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래도 배워야 한다. 어려워도 교육을 받아야 하고, 알고 있는 것들을 실천해야 한다. 환우를 이해하고 사랑해야 같이 살아갈 수 있다.  일부 질낮은 병원과 요양시설에서 무참히 짓밝히는 환우가 안되게 하기 위해서는 힘들어도 가족이 끌어안고 재활에 힘써야 한다. 

  내 나이 50살이 되니 사회도 많이 들여다보인다. 20대 청춘이 직장을 구하지 못해 고생하는 것도 알게 되고, 50대 가장의 고민도 알게 된다. 높은 사교육비를 감당하면서 교육시키는 고충도 알았다. 자녀양육이 끝나지 않으면 우리의 노후도 불안할 수밖에 없음을 안다. 부모님께도 효도할 수 없는 마음의 짐을 갖고 있다. 독립하지 않은 자녀들 교육하다보니 낀세대로써 어찌할 도리가 없다. 시부모님은 장남만 우선시하는 맘이다 보니 다 물려주고 병든 몸만 가지고 계시니 보는 것도 안타깝고 내 마음도 편치 않다. 

  우리딸 아들. 힘내자. 아침부터 밤까지 공부 하는 너희들이  밝은 표정으로 집에 돌아오면 고맙다. 지치고 힘들텐데 그런 모습 보이지 않고 잘 견뎌줘 고맙다. 엄마의 20대가 행복했었다는 것을 알게 해줘 고맙다. 철 모르고  낳아 키웠는데 잘 자라 준 너희들이 있어 즐겁다. "관심 끊어 줘" 바느질 하는 딸이 기특해 한마디 하다 들은 소리다. 그래도 좋다. 남편은 직장 다녀 바쁘고, 아이들은 엄마를 밀어내니 엄마는 혼자 '자유인'이다.

  새벽에 성경책을 1시간여 읽었다. 몸 상태가 좋아져 사람들도 만나고, 유머도 배우고, 공부해야 될 것도 많으니 부지런하게 움직이며 살면 된다. 기쁜 마음으로 하면 못 할 것도 없다. 올해 국립공주병원에서 입원적합성심사 위원도 해 보았으니 내년에도 할 일이 있을 것이다. 개정된 정신보건법도 읽어 보야야 한다. 성경책도 꾸준히 읽을 생각이다. 알고 보면 모든 것이 새롭다.

  외할머니, 친정엄마, 시어머니, 나, 우리딸 여자들의 삶을 잘 알고 있으니 정리 한번 해보는 글을 쓰고 싶다. 육체적인 일을 지독하게 해낸 윗 세대에  비해 난 모든면에서 여유롭다. 선배들이 못해낸 그녀들의 일생을 글로 잘 적어 기억해 주는 것도 뜻깊은 일이 될 것이다. 한 가족의 중심이었던 어머니. 그 험난한 일들을 이겨낸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생각해 본다. 내가 낳은 출산의 힘 아닐까? 내 보살핌이 없으면 안 되는 작은 생명을 살리기 위해 여성은 나를 희생해 가며 악착같이 살아온 것이다. 나보다 작고 여린 자식들을 잘 키우기 위해 나의 힘듦을 잊고 살아왔을 것이다. 나보다 항상 우위에 있었던 어린 자녀들. 나보다 너를 위한 삶이어서 대단한 것이다. 그러다 힘이 빠지고 늙고 병든 몸이 된 것이다. 아름답지 못하게 초라해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억하려고 애써야 한다. 그 어머니도 아름다운 여자였음을. 멋을 알던 고운 시절이 있었다고 기억해줘야 한다. 그녀들도 일바지가 아닌 예쁜 치마도 몸에 맞았던 때가 있었음을. 음식 만들고 청소와 빨래등을 하다보니 편한 차림의 그녀가 이제는 돌아가지 못하는 몸이 되고 말았다.

  나는 외출하려고 오늘도 화장대 앞에 섰다. 종이와 펜을 가지고 집을 나선다. 글씨 쓰는 걸 힘들어 하는 노인인 우리 윗분들을  떠올리며 걷는다. 단풍이 아름다운 교정을 걸어서 책상 하나를 차지하고 앉는다. 지금부터는 적어 나가기 시작한다. 곧 이 세상을 떠날 그분들을 대신해 그분들의 발자취를 찾아 나설 생각이다. 나중에 그리워 불러도 대답 못할 때 이 작은 종이위에 그려진 그분들의 기억이 생각나지 않을까?

9남매를 키워내신 외할머니,

5남매를 키워내신 우리 친정 부모님,

4남매를 키워내신 시어머니. 모두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저는 제 딸, 아들을 당신들의 사랑까지 얹어 사랑해 주렵니다. 여자인 삶을 응원하고 행복하게 살라고 제 딸을 보살펴 줄거랍니다. 인간의 꽃인 우리 딸과 아들. 너희들은 많은 사람들의 희망이다. 너희들은 못느껴도 우리들은 너희들한테 시선이 간다. 아름다운 청춘이고, 밝은 모습이 그 자체로 사랑스럽다. 걷지 못하는 할머니는 네가 서 있는 모습만으로도 예쁘고, 공부하지 못한 외할머니는 너희들이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뿌듯하다. 엄마한테는 너희들이 예쁜 애완동물처럼 안아주고 싶은 모습이다. 너희답게 엄마답게 잘 지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