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을 지키는 사람들

결정

오월의 신부 2003. 4. 5. 03:36
어머니의 교통사고 처리를 위해 소송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나홀로소송을 준비하였다. 그러나 장애가 예상되고, 지난 사고로 이미 장애인이신 어머니한테는 여러가지가 불리하게 작용할 것 같아 전문변호사한테 맡길 생각이다.

어머니는 가능하면 소송은 피하고 싶어하신다. 우선 어머니 자신이 소송 대상자가 된다는 것을 부담스러워하시고, 두번째는 큰 딸인 내가 너무 신경쓰고, 힘들어 하니까 되도록 원만한 합의를 원하신다.

그러나 나는 그럴 수 없다.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내가 지고 가기 힘든 일이어도 나의 어머니이시기에 끝까지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이번 건은 나홀로소송은 아니어도 끝까지 공부를 할 것이다.


어머니의 절망스런 상태를 너무나 잘 알기에 여기서 물러설 수가 없다. 지금 보험회사 직원과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에서 이기기에는 엄마는 너무 힘이 없고, 지식도 내가 아는만큼 이해하고 계시지 못하다.


내가 아무리 설명을 해도 어머니는 어쩔 수 없는 약자다. 지루한 병원생활을 계속해야 하는 상황이다.
예전처럼 일을 할 수 있는 상태도 아니면서 이제는 몸과의 전쟁을 치루셔야 한다. 힘든 농사일을 하면서 보고도 하지 못하는 괴로움을 당하며 살아야 한다.
일 잘하시던 지혜를 어디에 내놓지 못하고, 가슴으로만 자신의 한계를 알며 스스로 인내하며 살아야 하는 고통속에 빠지게 된 것이다. 이번 교통사고로 몸과 마음까지 또 한 번 크게 당하셨다.

난 이번 사고를 겪으며 정말 많은 것을 잃었다. 우선 원만하지 못한 사고를 통해 누구한테서도 위로받지 못할만큼 힘들었다. 그것은 교통사고 피해자는 우선 현장검증부터 엄청난 감정싸움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일말의 양심도 없는 가해자와 경찰의 일처리 때문에 빚어지는 일에서 또 한 번 피해사고와 맞먹는 고통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정말 다행스러운 것은 어머니가 돌아가시지 않고, 살아계셔서 나중에라도 바로 잡을 수 있어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이제 서울에 가서 방문상담을 해야 할 것이다. 우선 가족 전체에게 소송하겠다는 계획을 알리고 동의를 구할 생각이다. 현금이 들어가는 일이라서 섣불리 행동할 수 없는 일이지만 내가 내린 결론에 어떤 의논이 오갈지 걱정은 안된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까지 어머니의 사고 처리를 위해 늘 생각해 왔고, 인터넷에서 공부도 여러시간을 해서 상식은 쌓아 놓았다.

어머니한테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은 이것이다. 음식 만들어 날랐지만 그것으로는 어머니의 정신적인 고민을 해결해 줄수는 없었다. 그냥 편안하게 들어주는 딸도 되지 못했다.

언제나 목소리가 커지고, 어머니한테 바라는 것이 많은 부족한 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어머니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이 된다. 소송할 것을 염두에 두고 생각에 잠기다보니 너무 가슴이 답답하고, 외롭고, 이런 현실이 슬퍼 차라리 잊을 수 있다면 잊고 살고 싶은 일이다.

현실이라서 부딪치며 살아야 하니까 어려운 것 같다.


그간 어머니한테 자주 들락거리며 얻은 것도 있다. 우선 음식을 만들 때 아주 기분좋은 마음으로 하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맛있게 만들어서 우리가족도 먹고, 어머니도 맛있게 드실까를 생각하며 궁리를 참 많이 했다. 우리집이 분위기 좋은데 한몫 크게 했다. 전업주부답게 이제 음식은 잘 만든다.

두번째는 내 마음속에 모두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겼다. 친정아버지가 귀가 아파서 고생하시는데 아직 친정에는 못갔다. 그렇지만 내마음속에서는 아버지의 자리가 크게 차지하고 있다.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진 훌륭한 분이시다. 참으로 많은 어려움 이겨내고 살아오신 인내심 많은 분이시다.

세번째는 막내동생에 대한 애정이 살아 있다. 우리집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는 외삼촌이다. 잘 놀아주고,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며 행복했었다. 예전의 순둥이 막내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해하는 모습이 눈에 보여 가능한 많이 먹고, 즐겁게 지내게 하기위해 밥하는 많은 시간 공들였다. 보따리 싸는 것이 내 취미가 되었다. 병원으로 갈 태세라면 정말 빠르게 전개된다.


남편도 덩달아 바빴다.툭하면 병원에 들리자고 말하는 나를 위해 기쁜 마음으로 늘 데려다 주었다. 착하다는 것을 실감하며 매번 기분좋게 다녀와줘서 정말 고맙다. 어머니가 퇴원하시면 남편한테 메일이라도 한 통 보낼 줄 생각이다. 감사의 글을 적어서.


최종적으로 어머니의 허락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차분하게 일목요연하게 설명을 해서 큰 무리없이 승낙을 받아내고 싶다.


어머니와 딸의 관계.
진심으로 오갈 수 있는 가까운 세상에서 제일 가까운 사람인 것 같다. 어머니와는 동성이기에.
어머니에게 웃음을 전해줄 수 있는 딸이 되고 싶다.
어머니. 제가 무조건 들어줄 수 있는 존재가 되어 드리고 싶다. 가장 어려운 효도가 바로 이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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