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5시에 미래한테 호수를 맡겨놓고 대전에 갔다. 병원에 도착하니까 벌써 퇴원하려고 서류를 갖춰놓고 짐도 다 쌓아놓았다.정말 구급차만 불러 타고 가면 되는 상태였다. 난 엄마를 만나서 이야기하고, 의사를 따라다니며 이야기를 하고, 간호사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아버지도 엄마한테 버틸 힘이 없어서 그냥 힘없이 계셨다. 그래도 병원에 남아 있게 되어 다행이었다.
수술을 해야할지, 보전치료를 해야 할지 정말 결정내리가 어려웠다. 그냥 누워서 치료될때까지 기다렸다 만약 안좋은 결과가 나온다면 그건 정말 최악이다. 그렇다고 지금 고통없이 누워서 계신 엄마를 다시 수술해서 아픔과 끔찍한 재활치료를 하고 간병하기도 쉽지 않은 일을 해야 하나 정말 갈등이 너무나 많이 생겼다.
남동생네집에로 가신 외할머니와 친정아버지는 마음이 놓였다. 난 어머니가 시키는데로 쌓아놓았던 짐을 풀어서 어머니 마음에 들게 잘 정리했다. 만약 외할머니가 하시려면 매우 힘든 일이라고 했다. 수납공간이 보호자용침대를 밀어내야만 쓸 수 있어서 아주 불편했다. 깔끔하게 정리된 수납을 보고 친정어머니는 매우 좋아하셨다. 일상복으로 갈아입은 옷을 벗겨드리고, 다시 환자복으로 갈아 입혀 드렸다. 링게르줄이 있어서 쉽지 않은 일이다. 소변을 받아내고, 받침대를 끌어내려 주고, 시트위에 다시 기저귀대용을 깔아 드렸다. 정말 건강한 사람이 들어 붙어서 해주어야 할 일들이었다.
어머니가 수술을 원하지 않았던 이유는 수술하는 고통때문이 아니라 간병하는 사람이 매달려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자식을 다섯이나 두었지만 딸들은 학교다니는 아이들때문에 간병을 못하고, 아들은 일다니고, 막내는 집에 있어야 하니까 누구하나 마음 놓고 몸부리고 있을 상황아니라서 그냥 물리치료만 받으시겠다고 마음 먹으셨단다. 너무나 슬픈 이야기였다. 내 몸이 망가져 누워만 있어야 하는 엄마가 외할머니한테만 의존한채 더이상은 식구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으려고 모진 맘을 먹고 계셨던 것이다. 난 병원에는 세차례나 들락거렸지만 대소변을 보시라고 돌봐 드리줄은 몰랐다. 호수가 나가자고 떼쓰기 때문에 잠시 앉아 있기도 매우 힘들었었다. 상황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신 엄마는 도움을 청하려들지 않으셨다.
모처럼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눴다. 십일년전에도 아픈 엄마를 위해 정말 몸과 마음을 다해 간호하고 싶었어도 가게를 하기 때문에 아침저녁에만 들렀는데 지금은 아이들의 엄마고, 아내라서 난 엄마하고 먼 거리에 있었던 것이다. 시어머님을 오시라고해서 우리집에서 주무시라고 하고 난 처음 병원에서 잠을 잤다.
너무나 운이 나쁜 수술 사건이었다. 수술한다는 사실을 환자한테 갑자기 전하니까 엄마는 정말 큰 당황을 하셨고, 농담을 한 의사가 정말 미웠다. 수술안하면 퇴원하라는 말에 엄마는 가슴이 콩당콩당 뛰고 앞뒤 생각이 딱 멈춘 것이다. 교통사고 피해자이면서도 어디하나 의지할 곳 없는 누워있는 환자에게 그건 너무나 치명적인 이야기였다. 난 엄마를 이해한다. 두려워서 오히려 공격적이 되었을 엄마를 난 이해한다. 아니 옆에 있어주지 못했던 나 자신이 미울 뿐이다. 만약 수술환자가 취소하지 않아서 이번 사건이 없었다면 우리 엄마는 조용하게 수술 날짜 받아서 준비과정을 거쳐 떳떳하게 수술할 수 있었을텐데.
내가 병원에 남아 있음으로해서 마음 편하게 누워 있는 엄마가 보기 좋았다. 자식을 키워 놓고도 한없이 허전해 하셨을 어머니가 너무 안스러웠다. 부탁하고 싶은 것이 많아도 눈치만 보고 참고 넘어가셨을 순간이 너무나 가슴 아프다. 몸뚱이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상태는 그래서 너무 슬픈 고통인 것이다.
난 집에 돌아왔다. 미래는 동생 보라고 학교 못가게 했다. 어린 것이 호수를 돌봐주는데는 이골났다. 든든한 우리집 큰 딸이다. 나중에 우리 미래는 나와 같은 어려운 처지는 되지 말았으면 좋겠다. 맏딸은 정말 싫다. 우리 엄마는 맏딸이라서 정말 고생 많았다.
수술을 하면 당장 달려가 간호를 해 줄 것이다. 하루이틀 끝나지 않을 상황이라 정말 두렵지만 정말 많이 아플때는 엄마 곁에서 따뜻한 간호를 해주고 싶다. 그동안의 고생도 서러운데 또다시 사고로 아픔을 당하는 엄마가 너무 가여워서 난 외면할 수가 없다.
정말 이 불운이 행복을 가져주길 바란다. 우리 철없는 동생들이 빨리 자립했으면 좋겠다.
인분아, 경숙아 고마워. 보내준 글 잘 읽었어. 정말 눈물이 마르질 않고 흘러내린다.이 글 쓰는 동안 계속 흐르고 있지만 나에겐 정말 큰 힘이 된다.
좋지 않은 이야기 숨기고 싶었지만 내 스스로에게 너무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공간이라 적어두고 싶었다. 나중에 내가 엄마를 대신해 엄마의 일생을 기록해 줄 수 있다면 엄마를 잘 기억해주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서. 우리 엄마가 그냥 그렇게 살다가신 것이 아니라 온 몸으로 자식을 사랑하고, 사식을 사랑하다 나중에는 온 몸이 멍들고 아프고, 깨지는 고통을 당한 사실을 쉽게 잊고 싶지는 않아서. 엄마자리에서 흘린 눈물을 쓸어담아주고 싶어서. 적어도 한 사람이라도 엄마 꼍에서 엄마를 이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여자는 엄마란 굴레을 벗어날 수 없으니까. 엄마는 아무나 될 수 있지만 쉽게 그 역활을 다 할 수는 없는 자리이니까.
수술을 해야할지, 보전치료를 해야 할지 정말 결정내리가 어려웠다. 그냥 누워서 치료될때까지 기다렸다 만약 안좋은 결과가 나온다면 그건 정말 최악이다. 그렇다고 지금 고통없이 누워서 계신 엄마를 다시 수술해서 아픔과 끔찍한 재활치료를 하고 간병하기도 쉽지 않은 일을 해야 하나 정말 갈등이 너무나 많이 생겼다.
남동생네집에로 가신 외할머니와 친정아버지는 마음이 놓였다. 난 어머니가 시키는데로 쌓아놓았던 짐을 풀어서 어머니 마음에 들게 잘 정리했다. 만약 외할머니가 하시려면 매우 힘든 일이라고 했다. 수납공간이 보호자용침대를 밀어내야만 쓸 수 있어서 아주 불편했다. 깔끔하게 정리된 수납을 보고 친정어머니는 매우 좋아하셨다. 일상복으로 갈아입은 옷을 벗겨드리고, 다시 환자복으로 갈아 입혀 드렸다. 링게르줄이 있어서 쉽지 않은 일이다. 소변을 받아내고, 받침대를 끌어내려 주고, 시트위에 다시 기저귀대용을 깔아 드렸다. 정말 건강한 사람이 들어 붙어서 해주어야 할 일들이었다.
어머니가 수술을 원하지 않았던 이유는 수술하는 고통때문이 아니라 간병하는 사람이 매달려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자식을 다섯이나 두었지만 딸들은 학교다니는 아이들때문에 간병을 못하고, 아들은 일다니고, 막내는 집에 있어야 하니까 누구하나 마음 놓고 몸부리고 있을 상황아니라서 그냥 물리치료만 받으시겠다고 마음 먹으셨단다. 너무나 슬픈 이야기였다. 내 몸이 망가져 누워만 있어야 하는 엄마가 외할머니한테만 의존한채 더이상은 식구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으려고 모진 맘을 먹고 계셨던 것이다. 난 병원에는 세차례나 들락거렸지만 대소변을 보시라고 돌봐 드리줄은 몰랐다. 호수가 나가자고 떼쓰기 때문에 잠시 앉아 있기도 매우 힘들었었다. 상황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신 엄마는 도움을 청하려들지 않으셨다.
모처럼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눴다. 십일년전에도 아픈 엄마를 위해 정말 몸과 마음을 다해 간호하고 싶었어도 가게를 하기 때문에 아침저녁에만 들렀는데 지금은 아이들의 엄마고, 아내라서 난 엄마하고 먼 거리에 있었던 것이다. 시어머님을 오시라고해서 우리집에서 주무시라고 하고 난 처음 병원에서 잠을 잤다.
너무나 운이 나쁜 수술 사건이었다. 수술한다는 사실을 환자한테 갑자기 전하니까 엄마는 정말 큰 당황을 하셨고, 농담을 한 의사가 정말 미웠다. 수술안하면 퇴원하라는 말에 엄마는 가슴이 콩당콩당 뛰고 앞뒤 생각이 딱 멈춘 것이다. 교통사고 피해자이면서도 어디하나 의지할 곳 없는 누워있는 환자에게 그건 너무나 치명적인 이야기였다. 난 엄마를 이해한다. 두려워서 오히려 공격적이 되었을 엄마를 난 이해한다. 아니 옆에 있어주지 못했던 나 자신이 미울 뿐이다. 만약 수술환자가 취소하지 않아서 이번 사건이 없었다면 우리 엄마는 조용하게 수술 날짜 받아서 준비과정을 거쳐 떳떳하게 수술할 수 있었을텐데.
내가 병원에 남아 있음으로해서 마음 편하게 누워 있는 엄마가 보기 좋았다. 자식을 키워 놓고도 한없이 허전해 하셨을 어머니가 너무 안스러웠다. 부탁하고 싶은 것이 많아도 눈치만 보고 참고 넘어가셨을 순간이 너무나 가슴 아프다. 몸뚱이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상태는 그래서 너무 슬픈 고통인 것이다.
난 집에 돌아왔다. 미래는 동생 보라고 학교 못가게 했다. 어린 것이 호수를 돌봐주는데는 이골났다. 든든한 우리집 큰 딸이다. 나중에 우리 미래는 나와 같은 어려운 처지는 되지 말았으면 좋겠다. 맏딸은 정말 싫다. 우리 엄마는 맏딸이라서 정말 고생 많았다.
수술을 하면 당장 달려가 간호를 해 줄 것이다. 하루이틀 끝나지 않을 상황이라 정말 두렵지만 정말 많이 아플때는 엄마 곁에서 따뜻한 간호를 해주고 싶다. 그동안의 고생도 서러운데 또다시 사고로 아픔을 당하는 엄마가 너무 가여워서 난 외면할 수가 없다.
정말 이 불운이 행복을 가져주길 바란다. 우리 철없는 동생들이 빨리 자립했으면 좋겠다.
인분아, 경숙아 고마워. 보내준 글 잘 읽었어. 정말 눈물이 마르질 않고 흘러내린다.이 글 쓰는 동안 계속 흐르고 있지만 나에겐 정말 큰 힘이 된다.
좋지 않은 이야기 숨기고 싶었지만 내 스스로에게 너무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공간이라 적어두고 싶었다. 나중에 내가 엄마를 대신해 엄마의 일생을 기록해 줄 수 있다면 엄마를 잘 기억해주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서. 우리 엄마가 그냥 그렇게 살다가신 것이 아니라 온 몸으로 자식을 사랑하고, 사식을 사랑하다 나중에는 온 몸이 멍들고 아프고, 깨지는 고통을 당한 사실을 쉽게 잊고 싶지는 않아서. 엄마자리에서 흘린 눈물을 쓸어담아주고 싶어서. 적어도 한 사람이라도 엄마 꼍에서 엄마를 이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여자는 엄마란 굴레을 벗어날 수 없으니까. 엄마는 아무나 될 수 있지만 쉽게 그 역활을 다 할 수는 없는 자리이니까.
'아름다움을 지키는 사람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장 (0) | 2002.11.17 |
---|---|
수술날짜를 잡고 (0) | 2002.11.15 |
만약 나 혼자 있다면 (0) | 2002.11.12 |
불운 (0) | 2002.11.09 |
지각 (0) | 2002.1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