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을 지키는 사람들

이틀간의 고민

오월의 신부 2002. 12. 18. 16:42
남편 도움 안받고 일처리하기란 쉬운 일 아니었다. 어머니를 모시고 청양집까지 가기란 참 어려운 것이었다. 궁하면 통한다고 이른 새벽5시에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첫차가 있다는 생각이 났다. 6시20분차라고해서 차고지에 가봤는데 이곳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고 터미널에서 6시차라고 했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냥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캄캄한 새벽에 발길을 어디로 돌려야할지 생각이 안났다. 한참 서있다 병원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멀게만 느껴지는 길을 갔다. 병원에 도착하자 엄마는 다음차를 타기 위해 시간을 알아보라고 하셨다. 정산에서 8시10분차가 있다는 것을 알아내서 바로 출발했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정산까지 가고, 다시 30분을 기다렸다 시내버스를 탔다. 몹시 걱정했던 엄마상태는 다행히 보조기를 찬 상태에서는 잘 견디고 계셨다. 기다리는 시간은 추웠지만 차안에서는 이런저런 이야기로 잘 보냈다. 친정집에 도착해서는 아버지가 차려준 아침상을 받았다. 난 설겆이를 하고 가스렌지를 닦아주고 현장검증을 하러 갔다. 가해자는 이번에도 한참을 늦게 왔다. 경찰도 어이없어했다. 약속을 안지킨다고 혼을 냈다. 사고현장에서 사진을 찍고, 일은 끝났다.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왔다. 현장조사 할 때마다 난 이가 마주치는 추위에 떨었다. 이상하게 옷을 많이 입고 갔어도 여전히 추웠다. 그리고 끝남과 동시에 피곤이 몰려왔다.
전날 잠을 완벽하게 설친 탓이다. 어머니도 잠을 못주셨다고 한다. 첫차는 못탔어도 부지런을 떨어서 모든 일은 잘 끝났다. 이제 더 걱정꺼리도 없는 것 같은 홀가분함이 느껴졌다.


집에 와서 낮잠을 자고 다시 병원갈 음식을 준비했다. 동원이와 미래는 김을 바르고, 난 조개젓을 무치고, 동치미를 꺼내 썰어 담았다. 저녁식사를 같이 하기 위해 부랴부랴 가서 잘 먹었다. 어머니는 병원생활하면서 처음으로 밥 한공기를 드시고 우리밥을 덜어서 더 드셨다. 매우 맛있다며 구운 김을 잘 드셨다. 미래가 학교 빠지더니 병원에 간다고해서 택시타고 오갔지만 온 보람 느껴진 순간이었다. 잘 드시는엄마를 보니까 정말 좋았다. 앞으로도 종종 이런 시간 만들고 싶다.


오늘은 남동생편에 육개장을 끓여서 밥과 함께 보냈다. 온통 도시락 싸는 일로 머리속이 꽉 차 있다. 그래. 엄마를 위해서 하는 일인데 무엇이 필요하랴. 그냥 힘닿는데까지 열심히 쫒아다닐 생각이다. 엄마가 한때나마 웃고 계시면 그것이 좋을 뿐이다. 우리 아이들이 병원 가고 싶다는데 하루에 두번이라도 괜찮다. 그냥 가는거다. 자식 많은 우리 어머니 참 좋을 것이다. 아플때만이라도 외롭지않게 자주 들락거려 주니까 아마 작은 힘이나마 생기실 것이다. 그동안 키우느라 고생많은 엄마에게 그냥 가까이가서 동무가 되어주고 오는 것이 요즘 내생활의 전부다. 그냥 좋다. 엄마가 옆에 계신다는 것이.
교통사고 피해자의 입장 너무나 절실하게 알았다. 우리사회의 모순도 알았다. 하지만 배우고 알게 되는 상식 하나 는 것도 사실이다. 억척떨지 않으면 안되는 세상이 싫지만 필요하다면 끝까지 물고늘어지는 근성도 써먹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 고맙다. 마음으로 많이 응원해줘서.
그 따뜻한 마음 안고 난 오늘도 행복하게 지낼께.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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