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을 지키는 사람들

친구에게-신경숙-

오월의 신부 2002. 7. 24. 09:43
너무 너무 보고싶은 명숙아!
날씨가 너무 너무 좋다.
햇살은 빛나고 꽃들은 제각기 피어 이따금씩
불어오는 바람을 맞는다.
이렇게 좋은날에 마냥 기뻐만 할수 없는 나의
입장이 어쩐지 좀 그렇다.
음악을 켜놓고 신나는 음악이 나오면 내맘대로
막춤을 춰 본다.예쁜몸짓은 아닐지라도 거울속에
비치는 내 모습은 아름답다.나를 사랑하기 위한
또다른 내가 위로하고자 춤추는 모습일테니까.
숨이 차면 고꾸라지듯 엎드려 기도도 한다.
불쌍한 내동생 제발 낫게 해 달라고..
우리 부모님 그동안의 고생으로도 충분했다고....
그러면서 혼자 울고 또 울고 그러다 보면 미약하나마
웃으며 살수 있는 기운이 생긴다.
명숙아!
미안하다.정말 미안해!
온다는걸 몇번씩이나 거절해야 했던 나를 이해해주렴.
제발 원망하며 미워하지나 말았으면 좋겠어.
조금만 기다려주라. 내마음 온전히 추스릴수 있을때까지만.
사실!아직까지도 난 동생의 병을 인정할수가 없어.
그냥 바라만 보아도 어쩐지 가슴이 아려오는
그런 순둥이 같은 막내동생이었으니까.
병적인 증세가 나타나지 않으면 아직도 그 모습 여전하고...
그래서 더 가족들의 가슴을 더 아프게 하지.
그렇지만 명숙아!
이렇게 매일같이 우울하게 보내는것만은 아니니까
많은 걱정은 하지마.
힘든 상황이다 보니 인정이 아빠와의 관계가
더 깊어지고 서로간의 정이 더 많이 애틋해지는것 같아.
같이 손을 맞잡고 시간날때마다 산에 오른다.
인정이 현정이는 신이나서 앞서가고 우린 다정한
연인들처럼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에게 지팡이 같은
존재가 되어 산에 오르는데 너무 너무 좋더라.
산중턱에 있는 정자에 앉아 맛있는 음식도 먹고....
힘들땐 때로 사람곁에 있는것 보다 자연속에
묻혀 시간을 보내는게 훨씬 몸과 마음에 이롭다는걸 요즘들어 느낀다.
그냥 편안해지고 그 어떤 큰일도 그렇구나,그런일이
있구나,그럴수도 있지...싶거든.
그러기에 불행속에 더 많은 행복이 느껴지기에
저마다 한평생을 잘들 살다 가는건가봐.
명숙아!
세침때기 예리 잘 크지?예리 아빠도?
정말 정말 많이 보고 싶다.
순간 순간 너희부부와 우리부부 머리 맞대고 앉아서
이런저런 얘기 나누며 술잔도 부딪히고
적당히 취기가 오르면 닭살돋는 얘기도 하고
분위기에 휩싸여 목이 터져라 노래도 부르고 싶다는
강한 유혹이 내 마음속에서 요동을 친다.
그때 내 생일날 너무 너무 좋았었어.
평생 잊지 않을께.
막걸리와 안주가 근사했었지.세수대야 냉면도.
그래서인지 우리 인정이가 우리 곗날에 목숨을 건다.
엄마 계 언제 하냐고.
명숙이 이모네 언제 가냐고..
내 딸도 나를 닮아 네가 너무 좋은가 보다.
명숙아!
조만간에 내가 인천에 가든가 아님 우리집에
초대할께.꼭!
항상 내 아픔 모두다 드러내 놓고 얘기하고픈 넌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너무 안타깝다.
왠만한 거리라면 늘 찾아가 붙어 있을텐데.
잘 지내고 있자. 우리 서로.만날때까지.
2002년 4월 24일
대천에서 경숙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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