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을 지키는 사람들

친정아버지가 방아를 찧은 날

오월의 신부 2002. 8. 30. 00:24
장마가 끝나고 몹시도 더운 날이었다. 이런 날 친정아버지는 볏가마를 열개도 넘게 날라 방아를 쪘다. 큰딸이 쌀 없다고 하니까 이래저래 걸리니까 오늘 어려운 수고를 하신 것이다. 토지세로 나가는 쌀도 찌은 겸 해서 하신 일이지만 정말 그 노고를 생각하니 택배로 부쳐서 편하게 앉아서 받아먹어서는 안될 것 같았다. 한 번 가서 밥이라도 해드리고 싶었다. 친정엄마는 아이가 아프기라도하면 큰일이라고 오지 말라고 하셨다. 그래도 간다니까 많이 사오지말고, 배추한단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큰딸이 철들어서 마트에 가 배추를 사다 김치를 담았다. 저녁9시부터 자정까지 했다. 하지만 김치를 담으면서 참 즐거웠다. 내가 해주는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시는 친정아버지가 고마워서, 그리고 엄마가 좋아하시는 모습이 좋아서 난 즐거움에 들떠 있었다.이젠 내가 김치를 담아갈 수 있을만큼 살림도 할 줄 아는 것이 좋고, 그 일을 하면서도 즐거울 수 있다는 사실이 좋다. 일요일날은 계유사를우리집에서 할 예정이라 배추 2단을 사다 담아서 두 그릇에 똑같이 나눠 담아 놓았다.


나중에 우리 미래가 커서 엄마 힘들까봐 마음 써가며 김치를 담아온다면 기분이 어떨까?지금부터 기다리고 있는데 나처럼 서른다섯살에 철든다면 난그 긴 기다림을 재촉하지 말고, 느긋하게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할 것이다.


나 스스로 기쁜 오늘을 기억하고 싶어 늦은밤에 쓴다. 부모님을 위해 내가 이렇게 작은 일을 하고 즐거워하니까 이 세상에서 내가 행복하다고 느껴진다. 양념은 모두 부모님이 챙겨 주신 것들이다. 붉은 고춧가루, 가루낸 마늘,가루낸 생강은 친정어머니 것이고, 멸치액젓과 뉴슈가는 시어머님이 챙겨주시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만질때마다 고운 마음으로 날 챙겨주시는 분들이 참 고맙다. 손이 많이 가는 일들을 덜어주시는 부모님들께 정말 예쁜 딸로, 며느리로 곱게 살아가고 싶다. 나도 나중에 내 며느리에게, 딸에게 이렇게 잔정을 듬뿍 나눠주고 싶다. 두고두고 생각나는 것이 양념류이고, 항상 있어야만 하는 것들이기에 밥 먹을때마다 떠올려져서 좋은 것들이다.


농사지을 땅도 없고, 노동할 육체적 단련도 부족하지만 난 뭐가 되든 나눠주는 부모로 자리매김되도록 애쓰고 싶다. 우리 부모님들의 사랑을 잊지 않고 전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이제 내 자식들이 커서 내가 몸추스릴만하니까 생각이 부모님께 간다. 얼마나 지극한 마음으로 자식을 위하고, 또 돌아가시는날까지 오직 자식만 배려해주시는 훌륭한 위인들인 우리의 부모님이시다.


그동안 모르고 행했던 불효와 알고도 했던 불효를 벗삼아 이제부터는 좀 더 성숙한 자식으로 가까이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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