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을 지키는 사람들

김밥을 싸면 생각나는 얼굴-신경숙-

오월의 신부 2002. 6. 7. 18:07
작은딸 현정이가 오늘 현장체험학습으로
전주 동물원에 간다고 해서 아침일찍부터
김밥을 쌌다.
그 어느때보다 김밥이 예쁘고 맛있게 잘
싸져서 기분이 너무 좋다.
역시 시간에 쫓기지 않고 부지런을 떨어
좀더 남들보다 일찍 시작함으로 여유롭게
무언가를 할때 결과가 성공적이라서
만족할수 있는것 같다.
알록 달록한 속내를 드러내며 반들거리는
검은옷으로 갈아입고 내마음을 유혹하는
김밥을 보며 난 또 동생을 생각한다.
갖다 주면 맛있게 잘 먹을텐데...
유난히 김밥을 좋아하는 동생이다.
잘 있는지 궁금하다.
시간만 넉넉하다면 얼른 갖다주고 오고 싶다.
따지고 보면 김밥값보다 차비가 더 들테지만
중요한것은 김밥보다 얼굴을 보며 정을
쌓아가는 것일꺼다.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한번쯤 웃는얼굴을
보고 돌아오면 며칠은 거뜬히 행복할수 있음이다.
사람의 향기가 그리운 사람들에겐
그것이 최고의 보약이다.
묻지 않아도 서로의 안부를 알수 있기에
김밥을 싸면서도 생각은 시골집 식구들로 향한다.
우연한 기회에 어쩌면 갈수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늘 재료를 듬뿍 준비하게 된다.
그리고 언니도 뒤이어 떠오른다.
장사하느라 많이 고생했던 언니 역시 김밥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손님들이 언제 들이닥칠지 몰라 점심을 주로
김밥을 사먹어야 했던 몇년의 세월이 있었다.
늘 배가 고팠고 먹어도 먹어도 허기가 졌던
시절이었던것 같다.
가계이름이 아세로라 였었지.
오랫만에 불러보는 가계 상호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시장어귀에 작은규모의
그 가계에서 사연도 많았고 다녀간 사람도
참 많았었다.
언니와 나의 꽃다웠던 나이!
그안에서 언니와 쭈그리고 앉아 밥을 먹으며
미래(첫조카)와 함께 행복했던 시절이기도 하다.
살것도 아니면서 여러벌을 입어보고 전혀 미안한
기색도 없이 휑하니 나가버리는 몰상식한 손님들을
볼때면 언니모습이 너무 안돼보여서
홀로 자취집으로 향하며 울기도 많이 울었었다.
언니가 너무 불쌍한것 같아서...
그런날엔 저녁밥을 맛있게 준비해놓고
청소도 해놓고 그랬었다.
평소엔 하지도 않아 속만 썩이던 내가....
그렇게 힘들게 벌어서 주는 용돈을 다 큰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 썼다는 게 가끔은
내 자신을 미워하게 만들기도 한다.이제와서.
힘든시간들을 함께 걸어왔기에 언니를 향한
나의 마음은 늘 애틋하기만 하다.
선택의 기로에선 언제나 내겐 언니가 일순위이다.
그래서 늘 함께이고 싶고 좋은것을 볼때나
좋은곳에 있을때 함께할수 없으면 너무많이
안타깝다.
그래서 이렇게 이곳에 들어오면 언제나 언니를
만날수 있고 나의 그리운 마음들을 이렇게
남기고 갈수 있는 이공간이 있어 요즘은 너무
행복하다.
내가 들어왔을때 언니가 다녀간 흔적이 남아있고
또한 언니가 들어왔을땐 방금 왔다간 내마음의
체온을 느낄수 있을테니 우린 늘 만나서 수다떠는
기분이라서 늘 외롭지가 않다.


'아름다움을 지키는 사람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밤하늘의 별을 보며-신경숙-  (0) 2002.06.07
언니의 친구에게-신경숙-  (0) 2002.06.07
붕어찜 요리  (1) 2002.06.03
공주시티투어  (0) 2002.06.02
스승의 날-스티븐 교수와 저녁 식사  (0) 2002.05.24